넷플릭스에서는 많은 선택지가 있어서 어떤 영화를 봐야 할 지 고민이 됩니다.
책을 펼쳐서 목차가 마음에 들거나 문체가 끌리면 일단 읽어보는 것 처럼 영화의 줄거리도 비슷한 역할을 하죠.
줄거리에 이끌려 보게 된 영화 '팬텀 스레드' 감상 후기를 간략히 써보고자합니다.
이 영화는 까칠하고 예민한 드레스 디자이너 '레이놀즈'와 그의 연인이자 뮤즈인 '알마'가 주인공입니다. 영화 초반부에서는 다른 평범한 러브스토리처럼 풋풋하고 우연한 첫 만남을 거쳐 평탄한 만남을 이어가는 모습이 보이는 듯 합니다. 그녀는 레이놀즈와 의상실이자 집에 머무르며 많은 영감을 줬고 둘의 사랑은 더 깊어져갔지요.
그러나 지내는 시간이 늘어감에따라 점차적으로 삐걱거리는 부분들이 생기죠. 이를테면 아침식사를 하면서 노트에 떠오르는 디자인을 바삐 스케치하는 레이놀즈는 알마가 부산스럽게 식사를 하는 소리를 거슬려합니다. 조용히 하라고 하지만 그녀는 바로 수긍하기보다는 당신이 예민한거라며 의견을 내비칩니다. 결국 레이놀즈가 자리를 뜨자, 같이 식사를 하던 레이놀즈의 누나인 시릴은 조용히 그녀를 타이릅니다.
그렇지만 알마는 그의 까칠한 면모와 심지어 반대에 부딪힐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때론 그녀가 하고싶어하는 일들에 거침이 없었습니다. 시릴의 반대에도 그를 위해 그녀가 준비한 저녁 식사도 마찬가지였는데, 버터에 졸인 아스파라거스를 내어주는 일이 바로 그런 것중에 하나였죠. 결국 그것이 발단이 되어 그들은 격한 말싸움을 하게 됩니다.
이후에 알마가 보인 행동은 다소 놀라운데요. 독버섯을 곱게 빻아서 그가 마시는 차에 몰래 넣어서, 결국 레이놀즈는 열이나고 몹시 아프게 됩니다. 그 때 알마가 지극히 옆에서 간호를 하여 레이놀즈는 점차 회복을 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시릴이 의사를 부르기도 하지만 레이놀즈는 진찰을 거부한 채 알마만을 곁에 있기를 허락해요.
알마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나약해지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요. 그럴 때면 레이놀즈가 어김없이 자신에게 전적으로 의존한 채 어린 아기가 되는 상황을 알고 있기에, 의도적으로 그 상황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처음에는 복수심에 그를 해치려는가 싶었는데 그것은 저의 큰 오산이었죠. 오히려 사랑하기때문에 그를 일부러 수렁에 빠트린 후에 '결국은 당신이 힘들 때 나밖에 없지? 자, 그러니 나를 더 사랑해줘요' 라는 메세지를 전달하려고 했던거죠.
이 작전이 통했는지 레이놀즈는 그녀에게 청혼을 합니다. 결혼 생활을 시작하면서 그녀는 더욱 의도적으로 그 앞에서 그가 싫어하는 행동을 과감하게 합니다. 신혼 여행처럼 보이는 여행지에 가서도 식사를 소리내어하고 그 때 못마땅하는 듯 레이놀즈의 표정이 잡히지만 전처럼 다그치지는 않고 넘어갑니다. 또 어떤 날은 무도회에 춤추러 가고싶다고 말을 하기도하죠.
그렇지만 알마가 레이놀즈가 싫어하는 행동만을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일할 때 그의 열정과 노력을 존경했고
그가 만든 드레스를 입은 부인이 격없는 행동을 일삼자, 진심으로 속상해합니다. 그러더니 그 부인은 레이놀즈의 드레스를 입을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여 드레스를 도로 가져오자고 말하죠. 레이놀즈와 알마는 부인의 집으로 찾아가서 드레스를 입고 잠든 부인의 드레스를 가져왔는데, 레이놀즈는 알마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부분이 이 타이밍이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일에 엄청난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는 레이놀즈의 입장에서는 알마에게 고맙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 같아서 감명까지 받았을 것 같은 부분이었죠.
조금씩 삐걱 거리는 부분들은 여전히 있지만 결혼 생활을 하고 있던 찰나에, 레이놀즈는 시릴의 방에 찾아가서 알마가 자신의 삶의 해로운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누이에게 말을하고 있는 장면을 알마가 목격하고맙니다. 알마가 어떤 액션을 취할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어요. 이 영화는 잔인한 장면이 나오지도 않고 심하게 자극적인 장면이 없는데도. 은근히 긴장감이 감도는 연출들이 종종 나옵니다. 실성한 사람처럼 멍한 표정으로 바구니를 들고 회색빛 나무들 사이로 나선 알마를 보면서 다시 독버섯을 찾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그녀의 요리 장면이 다시 등장했는데요. 평화로운 것 같으면서도 기묘한 기운이 동시에 있던 그 장면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전에는 독버섯을 곱게 빻아서 티가 안나게 넣었다면, 이번에는 큼직큼직하게 썬것도 그러했구요. 레이놀즈가 싫어하는 버터도 많은 양을 넣는 순간을 화면에서 포착해서 보여줍니다. 심지어 레이놀즈에게 물을 따르는 장면도 일부러 주전자를 높게 들어서 쪼르륵 소리가 나게 따라주며 둘이 언쟁을 높이는 것도 아닌데 보는 이들로 하여금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더 이상했던것은 레이놀즈는 분명히 그녀가 수상쩍은 재료인 독버섯을 다듬는 것을 눈치챈듯 한데, 일부러 그녀 앞에서 보란듯이 입에 넣어 먹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다음 대사가 압권이었죠. 나는 당신이 쓰러졌으면 좋겠고, 그리고는 언제나처럼 회복해서 다시 강해졌으면 좋겠다 - 그런 뉘앙스의 대사였거든요.
그녀는 다시 태어나도 그와 다시 몇 번이고 다시 만날거라는 독백을 하므로써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크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녀는 미래를 상상해보기도 하는데 그녀의 무릎 베개를 하고 누워서 배고프다고 말하는 레이놀즈를 쓰다듬으며, 마지막 장면은 여전히 의상을 입어보고 치수를 재는 레이놀즈와 알마의 컷으로 영화는 마치게 됩니다.
레이놀즈와 다툴 때 자신이 대체 여기서 뭐하는 것인가, 하염없이 그를 기다리기만 하고 있다고 울면서 말하던 알마. 그리고 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독버섯이라는 요소를 사랑의 정촉매로 사용하기도 했던 알마. 알마가 까탈스러운 그를 위해서 희생하고 맞춰준 부분도 상당히 많고, 레이놀즈도 처음과는 다르게 그녀의 행동들을 눈감아주고 조율해가는 부분들은 현실에서 연애하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그렇지만 알마가 레이놀즈를 조금씩, 조금씩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하도록 일종의 조련을 해나가는 모습이 기괴하고 불편했던 것은 과연 '사랑'이라는 말로 용납이 되는 부분인가 하는 것 때문일거예요. '이게 다 너를 사랑해서 그런거야', '내가 아니면 누가 너를 사랑해주겠어, 나만큼 너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거야' 이런 말들도 얼핏 보면 정말로 나의 연인을 위해 하는 말처럼 보이지 않나요? 그렇지만 이런 말들이 가스라이팅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알마는 레이놀즈가 극적으로 자신의 필요성을 깨닫게 만들고, 자신의 존재가치를 부각시키 위하여 목숨에는 위협이 없을정도긴 해도 레이놀즈를 아프게 만드는 장면. 아픈 상황에서 곁에 있어준 그녀에게 자신도 모르게 그녀가 없으면 안된다는 인식을 강하게 받는 순간들. 이런 느낌의 사랑을 제가 해본적이 없기에 이해의 영역이 낮아서 다소 위험하게 느껴지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상대를 신체적으로 아프게 만들고 힘들게 만들면서까지 해야하는 사랑이라면 이런 관계가 건강한 사랑인가에 대한 의문은 남는것이죠.
영화를 해석하는 다양한 시각이 있을 것이고 다른 분들의 리뷰도 읽어보았는데 저는 이런 점들이 조금 더 강렬하게 와닿았을 뿐이고, 감상하는 사람 각자의 자유일 것입니다. 저 또한 연인이 있는 입장에서, 내가 상대방을 위해서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어쩌면 일종의 강요로 작용된 부분은 없나하고 반성을 하게 된 영화이기도 해요.
배우들의 감정선 변화, 화려한 드레스, 잔잔해 보이지만 은근히 예상치 못한 전개를 가지고 있는 영화 '팬텀 스레드' .
여운이 남는 영화로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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